넷플릭스 영화 계시록 리뷰: 평점 4.4/5 <추추천>
종교 스릴러 장르를 원래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연상호 감독의 <계시록>은 그 기대를 무너지지 않게 나름 채워준 작품이었다.
******장르: 종교 스릴러 / 미스터리******
처음엔 다소 어두운 톤과 느린 호흡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 번 빠져들면 끝까지 긴장감이 끊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의 믿음과 착각, 신념과 광기 사이의 경계를 끝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영화다.
렛츠 기릿
줄거리 (스포 물론)
성민찬(류준열)은 지방의 작은 개척교회 ‘사명의 나라 교회’를 이끄는 담임목사다.
믿음으로 교회를 일구고, 지역 아이들과 교인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그의 곁엔 아내 이시영과 어린 아들 현수가 있다.
평소처럼 평온하던 어느 날, 민찬은 아내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현수가 유치원에서 귀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원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유치원 측에서도 아이를 정상적으로 보냈다고 말한다.
민찬은 아들의 실종이라는 충격 속에서 갑작스럽게 떠오른 얼굴이 있다.
바로 며칠 전 교회에 들렀던 낯선 남자, 권양래(신민재)다.
양래는 단순한 나그네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초췌한 몰골, 무뚝뚝하고 불편한 분위기, 대화조차 어려운 낯섦.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그가 차고 있던 전자발찌.
민찬은 그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저 남자가, 내 아들을 데려간 범인이다.’
민찬은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실종으로 인한 충격은 민찬의 내면을 급격히 흔들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는 얼마 전, 아내 이시영이 헬스장 트레이너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겉으로는 조용히 신앙에 헌신하는 가정이었지만, 민찬의 일상은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겹쳐지며, 민찬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착각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확신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권양래를 몰래 미행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리고 결국, 골목에서 양래를 덮쳐 격한 몸싸움을 벌인다.
그 싸움으로 양래는 머리를 크게 다쳐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고, 민찬은 스스로 정의를 실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실 아들 현수는 유괴된 것이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네 부모가 별도 연락 없이 현수를 데려갔던 것이었고, 그 후 연락이 닿지 않아 오해가 발생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들은 멀쩡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민찬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진실이 밝혀지며 상황이 정리되나 싶었지만, 곧 진짜 유괴 사건이 벌어진다.
교회에 다니던 여중생 신아영이 실종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권양래가 실제로 범인이었다.
사건을 수사하는 강력4팀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민찬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 여동생이 권양래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고 죽음을 맞이했던 기억으로,
연희는 지금도 그 환영에 시달린다.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은 그녀에게 감정보다 논리를 우선시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연희는 사건을 조사하는 가운데 이상하리만큼 권양래에 집착하는 민찬을 보며 민찬을 조사하게 된다.
권양래의 과거, 특히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기억까지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요양원에서 권양래를 납치해 감금하고 있는 민찬을 발견한 후, 사투를 벌이게 된다.
어쨌든 권양래를 구해내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 하는 연희이지만,
결국 권양래는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하게 되고 아영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된다.
그리고 연희는 동생 사건을 잊지 못하며 계속 권양래의 과거,
특히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기억까지 조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권양래가 어릴 때 학대당하던 집의 ‘외눈박이 유리창’이란 상징적인 단서를 얻게 된다.
그 기억은 권양래의 무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었고,
연희는 그것을 실마리 삼아 폐건물 중 동일한 구조의 건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실종된 아영을 극적으로 구조해낸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 살아 있었다.
연희와 경찰은 권양래의 범행을 밝혀내고 아영을 구출해냈지만, 민찬의 내면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받은 ‘계시’가 옳았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은 무사했지만, 그 확신으로 한 사람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고, 결국 또 다른 아이를 잃을 뻔했다.
결국 민찬은 체포되고, 정신질환 진단을 받게 된다. 그는 더 이상 목사도, 아버지도 아닌 ‘범죄자’로서 감옥에 수감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민찬이 감옥에 수감된 후를 보여준다.
좁은 수감실 안, 그는 여전히 벽을 바라보며 기도한다. “주님, 저에게 다시 계시를 내려주십시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신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광기의 끝은 그렇게, 침묵 속에서 이어진다.
<계시록>에서 류준열의 연기는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섰다.
그는 목사이자 아버지, 동시에 광기에 물든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을 깊이 있게 보여줬다.
특히 감정 폭발이 아닌 억눌린 고요 속에서 파괴되어가는 그의 연기는 보는 내내 숨을 멈추게 만든다.
신현빈 역시 이연희라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의 인물을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해, 영화의 현실감을 높였다.
이 둘의 균형 덕분에 <계시록>은 단순한 장르 영화가 아닌, 심리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계시록>은 믿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믿음이라는 이름을 쓴 인간의 불안과 착각, 그리고 자기 정당화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우리가 보는 ‘계시’는 과연 진짜 신의 뜻일까, 아니면 도피처로 선택한 망상의 형태일까?
영화는 끝내 그 답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진짜’일지라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는 반드시 되묻고 확인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종교 스릴러, 심리극, 인간 내면의 취약함. 이 모든 키워드를 좋아한다면 <계시록>은 절대 가볍게 넘길 영화가 아니다.
믿음을 가진 자, 반드시 의심하라.
그 의심 없이는, 계시는 착각이 된다.